일본 내 오디오 제조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인터내셔널 마케팅을 펼치는 메이커 외에 자국에서만 통용되고 즐겨지는 메이커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 때문에 스테레오 사운드나 또는 파일웹, 오디오 엑설런스 등에서 주최하는 어워드에서는 생소한 일본 메이커들이 꽤나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케이블 등 액세서리 부분에서 일본 메이커의 활약은 흥미진진하다. 에소테릭, 아큐페이즈 그리고 파이오니아의 TAD 등을 비롯 많은 컴포넌트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만큼 여러 액세서리 시장도 발전해있다.

예를 들어 어쿠스틱 리바이브, 오야이데, 아크로링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나노텍 시스템즈 그리고 조노톤이라는 메이커도 발견하게 된다. 최근 유럽이나 미국 쪽 메이커들의 특징은 도체보다는 지오메트리 분야로 많은 연구를 진행한다. 국내 메이커들도 잘 살펴보면 흔한 OFC를 도체로 하지만 지오메트리나 커넥터와 터미네이션 등에 매우 공을 들여 고가에 판매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 조노톤의 설립자 토시히코 마에조노

조노톤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도체 자체에 특히 집중하는 토종 일본 메이커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국내에 소개된 것은 근래 들어서 이지만 사실 일본 내에서는 여러 하이파이 매거진에서 이미 이름을 날리며 여러 어워즈에서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시작부터가 토종 일본 메이커의 정통 메이커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토시히코 마에조노 회장이 개발한 7N급 케이블이 일본 내 오디오파일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얻으면서 조노톤이라는 케이블 전문 메이커가 출범하기에 이르렀고 현재는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며 오디오파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일본 토종 메이커로 위상이 높다.

조노톤의 설립자 토시히코 마에조노의 커리어를 보면 조노톤 케이블의 설계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케이블의 핵심 중 하나인 도체에 있어서 그는 무엇보다 순도를 중요시했다. 본인이 아날로그 카트리지 제작자로서 일해 오며 많은 도체들을 사용, 연구해보다가 6N, 7N, 8N 등급의 고순도 동선을 만나게 되면서 케이블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여기서 고순도 동선에서만 그쳤다면 변방의 케이블 메이커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 DMHC 지오메트리

하지만 조노톤은 이에 더해 매우 복합적이며 독창적인 지오메트리를 연구, 개발해냈다 조노톤에서는 DMHC 고 부르는 지오메트리가 그것이다. 이는 7N 구리와 6N, 5N 등급의 PCOCC 단결정 도체 그리고 4N 무산소 동선 등을 하나의 케이블 안에 모두 사용한다. Discrete, Multi Conductor, Herical-Parallel, Construction. DMHC 는 넓은 대역에 걸친 미세한 신호를 전달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구조라고 조노톤은 믿는다.

7NAC-Shupreme 1

조노톤은 Shupreme, Grandio, Meister, Blue Spirit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각 등급에 따라 매우 합리적인 가격과 충실한 성능을 구현하고 있다. 이번에 내게 배달되어 온 케이블은 그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Shupreme 시리즈 중 7NAC-Shupreme 1라는 다소 긴 모델명의 RCA 인터커넥터다. 그리고 이 모델엔 조노톤이 주장하는 가장 뛰어난 케이블 소재와 구조에 대한 모든 연구결과가 녹아 있다.

조노톤이 추구하는 케이블의 이상은 살아 숨 쉬는 순수함과 박진감 넘치는 에너지다. 언뜻 보면 하이엔드 케이블을 제조하는 여느 메이커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구현 방식은 내가 접해본 그 어떤 케이블보다 무척 복잡하며 흥미롭다. 7NAC-Shupreme 1 에 사용한 도체가 무척 다양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고순도 7Ncu 와 특수 구리합금, POCOCC 는 물론 OFC 등 총 다섯 개의 도체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조합해 +, - 신호 전송에 각각 네 가닥씩 안배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폴리에틸렌 파이프를 삽입해놓은 형태다.

이런 다양한 선재의 복합적인 하이브리드 설계 타입은 조노톤에서 실시한 매우 다양한 실험, 테스트 결과 가장 이상적인 신호 전송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신호 전송에 영향을 주는 인덕턴스, 커패시턴스, 고주파 왜곡 등 매우 다양한 부문에 걸쳐 매우 탁월한 결과를 보여주었고 이를 DMHC 로 규정했다. 다른 케이블도 조금씩 다른 설계를 보이지만 이것이 조노톤 케이블의 핵심이자 존재 이유다.

서로 다른 총 8심의 케이블이 내부에서 공존하는 7NAC-Shupreme 1 이지만 독보적인 설계 덕분에 도체 저항은 9.5mΩ/m으로 매우 낮다. 코어 절연체로 고순도 폴리에틸렌을 사용했음은 물론 차폐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내부에 두터운 알루미늄 랩 차폐 등 총 세 겹의 강력한 차폐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케이블은 외관에서 두 가지 독특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S/N비 개선을 위한 페라이트 코어 장착으로 입/출력 쪽에 각 1개씩 장착한 모습이다. 한편 접지 케이블을 외부로 빼놓았다. 이는 그냥 사용해도 되지만 만일 포노앰프 등 아날로그 관련 기기에 적용할 경우 매우 요긴하다.

마지막으로 단자 부분은 나의 엄지 손가락만한 길이에 매우 견고한 모습을 자랑한다. 조임식 단자로 조작이 매우 편리하고 조임 강도 또한 뛰어난 편이다. 실제 신호가 전달되는 접촉면엔 은도금 위에 다시 로듐을 도금한 독특한 방식이다. 한편 XLR케이블 같은 경우엔 뉴트릭 제품을 사용하며 신호 전송면에 금도금을 해 RCA와 차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셋 업

7NAC-Shupreme 1 은 사진상으로 보는 것보다 매우 두껍고 무겁다. 마치 웬만한 전원 케이블 정도 굵기로 심지어 내가 사용하는 이소텍 전원 케이블보다 더 굵다. 하지만 내부 도체 및 절연, 차폐 재료의 연성이 좋고 내부 지오메트리 특성 덕분에 매우 부드럽다. 따라서 이리 저리 얽히고 설켜 있는 내 시스템에서도 세팅 자체가 어렵지 않았다. 사용한 시스템은 다인 컨피던스 C4를 중심으로 플리니우스 분리형 앰프 그리고 마이텍 Brooklyn DAC, 솜오디오 sMS-200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을 사용했다. 재생은 룬(ROON)을 활용해 아이패드 에어로 조작하며 테스트했다.

리스닝 테스트

• 조노톤 7NAC-Shupreme 1 은 어떤 특정 대역을 부풀리거나 감쇄시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매우 플랫한 주파수 특성을 해치지 않는 정교한 케이블이라는 인상이다. 앤 비선의 ‘Little black lake’를 들어보면 무대는 비교적 깊게 형성되며 표면 밀도가 높고 심도가 깊다. 리빙스턴의 ‘Grandma’s hands’ 같은 곡에서도 리빙스턴의 보컬은 전혀 번지지 않고 박수 소리는 산뜻하며 선명하다. 배경은 무척 어둡고 말끔해 악기나 보컬의 음상을 해치지 않아 매우 개운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 오스카 모텟 합창단의 ‘O holy night’을 들어보면 소프라노 위치는 눈높이에서 또렷한 위치를 보여준다. 음색은 무척 싱싱하고 싱그러운 톤으로 낭랑하게 노래한다. 합창이 시작되자 전/후 원근감이 훌쩍 상승해 깊이가 약간 더 깊어진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하 높이 표현이 더 두드러진다. 한편 매우 깊은 저역을 오가며 연주하는 오르간은 풍부하고 위압적인 느낌은 없지만 그 대신 볼륨을 높여도 해상력이 높고 무척 선연한 느낌이 왜곡되지 않는다.
• 7NAC-Shupreme 1 의 스피드는 매우 빠르며 표면도 산뜻하고 담백하다. 걱정했던 것처럼 표면이 질척이며 번들거려 표면 입자를 뭉개버리는 느낌은 없다. 마치 방금 세탁한 옷의 표면처럼 보송보송한 느낌이다. 트론트하임 졸리스텐의 브리튼 ‘Simple Symphony’에서 화려하면서 권위적인 현과 관악의 빠른 페시지는 민첩하며 각 악기들의 표면 질감까지도 세밀하게 잡아낸다. 고역에서 본 케이블의 화사하고 고혹적인 빛깔이 아주 약간 묻어난다. 하지만 분명 입자를 짓눌러 뭉개 왜곡하거나 얇게 흩날리지도 않는다. 매우 심지 곧은 고순도 PCOCC 의 소리와 유사하다.
•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ake five’에 심벌 사운드는 매우 세밀하게 표현되어 찰랑거리는 소리가 실체감을 높여준다. 스틱이 눈에 보일 듯 높은 해상도와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은 그 결이 매우 온화하고 부드러워 귀를 자극하는 일이 없이 차분하다. 관건은 드러머의 솔로 파트 재생 구간인데 비교적 단단하고 말끔하게 마무리된다. 예를 들어 레퍼런스 레코딩 HRX 샘플러 중 ‘Crown imperial’에서도 전개가 민첩하고 추진력이 뛰어나지만 저역은 약각 안쪽으로 물러나 있어 점잖고 온건한 저역 특성을 드러낸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 평

내가 예상했던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빗나갔다. 착색은 아주 약간이었고 해상도는 무척 높았으며 심도가 높고 원감이 매우 잘 느껴졌다. 음의 전개가 매우 드라마틱하다거나 또는 특정 대역과 대역 사이의 밸런스가 뒤틀어져 묘한 앰비언스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다분히 단결정 PCOCC 의 특성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만 좀 더 세밀한 표현력과 고급스러운 표면 질감이 더해져있다. 높은 해상도 위에 탄탄하고 명쾌한 표현력은 물론 무게 중심이 낮고 젠틀한 특성 덕분에 특히 다이내믹레인지가 넓은 고음질 클래시컬 음악 레코딩에서 더 빛을 발한다. 고순도 도체와 DMHC 라는 독보적인 복합 지오메트리가 이뤄낸 쾌거다.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