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티프 풀레인지 스피커 ‘Hagen’ © News1 |
오디오 리뷰를 하다보면 '첫 느낌'이 매우 정확할 때가 많다. 오래 들을수록 어느새 그 소리에 내 귀가 익숙해져 도대체 다른 제품과 뭐가 결정적으로 다른지 뒤죽박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오디오를 세팅해놓고 들리는 첫소리에 거의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아, 이번 조합은 음의 입자가 곱구나, 이번 스피커는 무엇보다 대역밸런스가 돋보이네, 이런 식이다. 일감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최근 네덜란드 몰라몰라(Mola-Mola)의 프리앰프 'Makua', 모노블럭 파워앰프 'Kaluga', 독일 보자티프(Voxativ)의 풀레인지 스피커 'Hagen' 조합을 들었다. 일감은 '극사실주의 재현'이라는 것. 가수의 들숨과 날숨, 기타 현과 손가락의 마찰음, 심지어 녹음시에 낀 플로어 노이즈까지 모조리 잡아냈다. 두번째 인상은 사운드 스테이지가 무척 입체적이라는 것. 곡에 따라 양 스피커 바깥 1m 정도까지 무대가 좌우 앞뒤로 펼쳐졌다. 세번째 인상은 'Hagen'이 마치 대형기 같은 풍성한 소리를 내줬다는 것. 하긴, DAC를 내장한 프리앰프가 2000만원, 두 덩이 파워앰프가 1200만원, 스피커가 전용스탠드(200만원) 포함해 800만원이니 이 정도 퍼포먼스가 안 나오면 '배신'이다.
몰라몰라 DAC/프리앰프 ‘Makua’(가운데), 모노블럭 파워앰프 ‘Kaluga’ © News1 |
우선 몰라몰라는 필립스 출신의 오디오 엔지니어 브루노 푸제이(Bruno Putzeys)와 얀 페터르 반 아메롱겐(Jan-Peter van Amerongen)이 네덜란드 그로닝겐(Groningen)에 설립한 하이엔드 오디오 제작사로, 'Mola'는 바닷물고기인 개복치를 뜻한다. 실제로 이들의 스마트폰이나 PC/MAC 앱은 귀여운 개복치 모양을 하고 있다. 'Makua'와 'Kaluga' 역시 옆에서 보면 부드러운 유선형 모양의 개복치 섀시 디자인. 두 제품 모두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Makua'는 라인 프리앰프인데, 무엇보다 모듈화한 각 증폭단을 '차동증폭'(single-ended driven differential) 회로로 설계, 노이즈 유입방지를 막은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DSD도 재생할 수 있는 DAC와 LP를 재생할 수 있는 포노앰프를 역시 모듈 형식으로 내부에 장착할 수 있다. 이번 시청기는 설립자인 브루노 푸치스가 직접 설계한 DAC가 내장된 모델. PCM은 32비트/384khz까지, DSD는 DSD256까지 재생할 수 있다. 입력단은 언밸런스(RCA)와 밸런스(XLR)가 각각 5조씩 마련됐고, 출력단은 바이앰핑을 위해 2조가 마련됐다. 출력임피던스는 44옴, 최대 출력전압은 7.75Vrms, 볼륨을 통한 게인 조절범위는 -70dB~+15dB.
몰라몰라 파워앰프 ‘Kaluga’ 내부 © News1 |
'Kaluga'는 좌우채널을 각각 담당하는 두 덩이 파워앰프로, 클래스D 증폭을 통해 스피커 임피던스값이 8옴일 경우 무려 400W 출력을 뿜어낸다. 4옴에서는 700W, 심지어 웬만한 앰프라면 홀랑 타버릴 2옴에서도 1200W를 낸다. 그런데도 폭 20cm, 높이 11cm, 안길이 33.5cm에 무게가 7kg밖에 안나간다. 출력 임피던스가 0.002옴에 불과해 댐핑팩터가 무려 4000인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파워앰프 모듈은 브루노 푸제이가 하이펙스(Hypex) 재직 시절 개발, 93%라는 경이적인 효율을 자랑하는 ‘Ncore NC1200’ 모듈을 채택했다.
이밖에 신호 흐름을 방해하는 임피던스 값을 최소화하기 위해 커넥터 대신 부품들을 일일이 직접 보드에 납땜한 방식이 신뢰감을 준다. 신호대잡음비(SNR) -128dB, 전고조파왜율(THD) 0.003% 등 스펙은 이미 하이엔드다. 게인은 파워앰프의 표준과도 같은 28dB. 입력단은 2개(밸런스/언밸런스), 스피커 출력용 바인딩 포스트는 2조가 마련됐다.
보자티프 풀레인지 스피커 ‘Hagen’ + 전용 스탠드 © News1 |
보자티프는 벤츠 여성 엔지니어 출신인 이네스 아들러(Ines Adler)가 2005년 독일 베를린에 세운 풀레인지 스피커 및 앰프 제작사. 라틴어에서 따온 'Voxativ'는 '미래의 소리'(Voice of the Future)라고 한다. 풀레인지 스피커는 단 한 개의 유닛으로 전 대역대를 커버하는 스피커로, 두 개 이상의 유닛이 들어간 일반 스피커의 '필수품' 네트워크 회로가 없다. 때문에 음질열화를 일으킬 근본 요인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저역과 고역의 재생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물론 보컬 같은 중역대 재생에서는 영원한 ‘갑’이다.
그런데 보자티프 스피커 유닛을 자세히 보면 '로더'(Lowther)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빼닮았다. 풀레인지 자작파들의 바이블과도 같은 그 로더 유닛 말이다. 로더는 영국의 음향물리학자 폴 보잇(Paul Voigt. 1901~1981)이 설립한 제작사. 1947년 최초의 트윈 콘 유닛을 개발, 풀레인지 스피커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다. 고역 개선을 위해 중저역용 콘 위에 고역용 보조 콘 '휘저'(whizzer)를 붙였다. 또한 휘저 안에는 고역의 원할한 방사를 위한 원뿔 모양의 페이즈 플러그가 붙었다. 로더 유닛의 이러한 전체 디자인이 보자티프 유닛과 똑같아 보인다는 얘기다.
보자티프 유닛 ‘AF-1.5’ © News1 |
이는 이네스 아들러가 로더 마니아였고 로더 유닛의 매력에 빠져 오디오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벌어진 피할 수 없는 오해다. 하지만 그녀는 로더와는 전혀 다른 풀레인지 유닛을 만들고 싶어했다. 바로 부족한 저역과 고역, 특유의 사유팅 소리 같은 로더 유닛의 단점이 거슬렸기 때문. 그래서 보자티프는 '진동판' 콘지(diaphragm)의 무게를 대폭 줄여 고역 재생능력을 높이고, 흔히 '엣지'라 부르는 서라운드의 앞뒤 이동거리를 대폭 늘려 해상력을 높였다.
또한 중저역을 담당하는 콘 유닛의 직경을 로더에 비해 키웠는데, 이는 보자티프 스피커가 내부에 백로드혼(back-loaded horn)을 채택, 그 구조상 앞에 붙은 유닛의 직경이 클수록 좀더 풍성하고 단단한 저역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휘저 콘의 직경은 줄였다. 고역을 담당하는 휘저가 크면 불필요한 반사음이 많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이번 시청기는 보자티프의 유일한 북쉘프형 'Hagen'이다. 5인치짜리 풀레인지 유닛(AF-Hagen)을 탑재해 60Hz~20kHz 대역을 커버한다. 감도는 풀레인지답게 무려 96dB에 이른다. 무게는 6kg. 'AF-Hagen' 유닛은 기본적으로 페라이트 마그넷을 쓴 'AF-1.5'이지만, 옵션으로 좀더 강력한 자속의 네오디뮴 마그넷을 쓴 ‘AF-2.6’ 유닛을 선택할 수도 있다.
백로드혼 출구(포트)는 전면 패널 밑에 슬릿 형태로 나 있다. 피아노 래커 마감의 품질이 상당히 높다. 이밖에 눈길을 끄는 것은 전용 스탠드인데, 윗면 네 귀퉁이에 뾰족한 스파이크가 달려 있어 'Hagen'을 2㎝ 정도 살짝 공중부양시킨다. 물론 깔끔하고 선명한 저역재생을 위해서다.
몰라몰라 프리앰프 ‘Makua’ © News1 |
Makua+Kaluga+Hagen 조합의 본격 시청을 위해 평소 자주 듣는 음원을 몇 곡 골랐다. 'Makua'에 DAC가 내장됐기 때문에 필자의 맥북에어와 USB케이블로 연결시켜 CD급 스트리밍 서비스인 타이달(TIDAL)과 맥북에어에 담긴 24비트 음원을 주로 들었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는 밸런스 인터케이블로 연결시켰다. 스피커케이블은 아날리시스 플러스의 'Big Silver Oval'이라는 제품을 동원했다. 순은선이다.
첫 곡부터 이번 조합의 매직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안네 소피 폰 오터의 'Baby Plays Around'를 틀었는데 노이즈가 꽤 귀에 거슬렸기 때문. 혹시 USB케이블이 너무 길기 때문인가 싶어 짧은 케이블로 바꿨지만 별무소용. 이 곡 녹음 자체의 플로어 노이즈가 심한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대놓고 드러내주는 실력 혹은 냉정함에 깜짝 놀랐다. 물론 96dB라는 스피커의 높은 감도와 400W 대출력의 협공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오터의 들숨과 기척, 피아노 현과 인클로저의의 공명음, 기타 현과 손가락의 마찰음까지 낱낱이 잡아냈다.
몰라몰라 프리앰프 ‘Makua’ 내부 © News1 |
'녹음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조합의 가장 큰 덕목은 '극사실주의'였는데 이는 2번째 곡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제니퍼 원스의 'Famous Blue Raincoat'가 시작되자마자 스피커 유닛에 귀를 바싹 갖다댔지만 이번에는 노이즈가 전혀 안들린다. 목소리와 악기 소리 외에는 그냥 칡흙같은 암흑이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의 노이즈 관리가 그만큼 출중하다는 반증이다. 포커싱, 스테이징, 이미징 모두 만점에 가까운 가운데, 바닥쪽에서 울리는 첼로의 묵직한 저역에도 깜짝 놀랐다. 스피커의 저역 하한 '60Hz'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프리앰프 'Makua'의 분해능과 해상력에 감탄한 곡은 터틀 크릭 합창단의 'Pie Jesu'. 여성합창단이 아래쪽 안쪽에, 남성합창단이 위쪽 바깥쪽에 도열해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소프라노는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리는데 사운드 자체는 또렷하다. 하이엔드 프리앰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원근감'이 최상급이다. 이는 'Makua'에 내장된 DAC와 프리앰프 자체의 분해능이 그만큼 고품질이라는 반증. 파워앰프 'Kaluga'는 클래스D 증폭이라는 선입견을 보란듯이 배반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클래스D 앰프 특유의 '건조, 메마름, 퍼석거림, 냉정, 앙상' 이런 특징들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몰라몰라 파워앰프 ‘Kaluga’ © News1 |
‘녹음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조합의 가장 큰 덕목은 ‘극사실주의’였는데 이는 2번째 곡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제니퍼 원스의 ‘Famous Blue Raincoat’가 시작되자마자 스피커 유닛에 귀를 바싹 갖다댔지만 이번에는 노이즈가 전혀 안들린다. 목소리와 악기 소리 외에는 그냥 칡흙같은 암흑이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의 노이즈 관리가 그만큼 출중하다는 반증이다. 포커싱, 스테이징, 이미징 모두 만점에 가까운 가운데, 바닥쪽에서 울리는 첼로의 묵직한 저역에도 깜짝 놀랐다. 스피커의 저역 하한 ‘60Hz’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프리앰프 ‘Makua’의 분해능과 해상력에 감탄한 곡은 터틀 크릭 합창단의 ‘Pie Jesu’. 여성합창단이 아래쪽 안쪽에, 남성합창단이 위쪽 바깥쪽에 도열해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소프라노는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리는데 사운드 자체는 또렷하다. 하이엔드 프리앰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원근감’이 최상급이다. 이는 ‘Makua’에 내장된 DAC와 프리앰프 자체의 분해능이 그만큼 고품질이라는 반증. 파워앰프 ‘Kaluga’는 클래스D 증폭이라는 선입견을 보란듯이 배반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클래스D 앰프 특유의 ‘건조, 메마름, 퍼석거림, 냉정, 앙상’ 이런 특징들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의 ‘말러 2번 교향곡 1악장’은 ‘유닛 1개’라는 물리학의 법칙을 뒤집는 소리를 들려줬다. 초반 첼로와 베이스가 일궈내는 저역의 존재감과 원근감, 약음에서의 미세한 디테일 재현과 대역밸런스, 투티에서의 거침없는 터트림과 분출까지. 특히 팀파니 연타와 투티에서는 어디 다른 곳에 우퍼나 서브우퍼를 숨겨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소 3웨이 이상의 대형기 같은 소리가 났다. 다만, 금관들이 일제히 가세한 대목에서는 약간 ‘쏘는’ 소리가 났는데, 이는 파워앰프의 출력이 워낙 셌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기회가 닿는다면 같은 곡을 직열3극관으로 구동되는 10W 내외의 소출력 진공관 앰프에 물려 듣고 싶다.
이밖에 브라이언 브롬버그의 ‘Come Together’에서는 마른 하늘에 번개가 내리치듯 우드 베이스의 온갖 아티큘레이션이 생생히 드러났고, 쳇 앳킨스의 ‘Life In My Treehouse’에서는 초반 차임 소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결처럼 유유히 움직이는 대목이 기막혔다. 에이비슨 앙상블의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는 각종 현악기의 연주를 바로 앞에서 관찰하는 듯한 생생함과 현장감이 두드러졌다. 바이올린 소리가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럽게, 쇳소리가 날 때는 아주 날 것 그대로 들려 감탄했다.
맞다. 이번 몰라몰라 프리파워와 보자티프 ‘Hagen’ 조합의 최대 덕목은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즉 초정밀 재생이었다. 특히 프리앰프 ‘Makua’의 섬세한 분해능과 초저노이즈, ’Hagen’의 크기를 잊게 하는 스테이징과 싱싱한 질감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kimkw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