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브리앙에 따르면 그가 처음 만든 DAC은 지금은 단종된 버브라운(Burr Brown.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2000년에 인수)의 ‘PCM1704’ 칩을 기반으로 했다. ‘PCM1704’ 칩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R2R NOS(Non Over Sampling) 오디오 칩’으로, 수많은 저항을 집적회로(IC)에 담아 컨버팅을 수행한다. 집적된 저항의 오차범위는 지금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큰 폭인 ‘1%’ 수준이었다.
뱅상 브리앙은 그러나 토탈댁 설립 후 ‘PCM1704’ 같은 범용 DAC 칩을 쓰지 않고, 수백개의 저항을 일일이 기판 위에 납땜한 디스크리트 방식의 DAC만을 만들었다. 기판 위에 늘어선 저항들의 모습이 마치 사다리(ladder) 같다고 해서 래더 DAC이다. 현재 토탈댁은 오차범위 0.01%의 비쉐이 포일 레지스터(Vishay Foil Resistors) 저항을 쓰고 있다. 이 저항은 미국 비쉐이 포일 레지스터의 고유기술인 ‘BMF’(Bulk Metal Foil) 기술이 투입된, “현존하는 최고의 초정밀 저항”(뱅상 브리앙)이라고 한다.
그러면 토탈댁에서는 왜 이렇게 초정밀 저항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리고 토탈댁이 DAC 설계로 델타 시그마(Delta Sigma) 방식 대신 R-2R 래더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R2R 래더 방식의 DAC은 저항과 이들 저항이 연결된 마이크로 프로세서만을 이용, 2진법의 디지털 신호를 전압 형태의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준다. 예를 들어 8비트 디지털 신호의 경우, 1) 통상 3.3V인 기준전압이, 2) 총 256가지(2의 8승)로 표현되는 서로 다른 입력값에 따라, 3) 16개 저항(2 x 8)의 저항비(R vs 2R)에 의해, 4) 서로 다른 출력전압으로 바뀐다(전압분배). 그리고 이렇게 매 샘플링 레이트 때마다 얻어지는 출력전압값을 촘촘히 이어주면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파형이 얻어지는 원리다.
▲ Totaldac이 시연되고 있는 2017 뮌헨오디오쇼 부스
따라서 비트수가 높을수록, 저항이 정밀할수록 아날로그 파형은 정교해지고 정확해진다. 특히 출력전압값이 높은 고역대의 컨버팅일수록 저항의 정밀도가 생명이다. 만약 저항마다 저항값이 다르다면(오차범위가 크다면) 저역대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누적 저항값이 크게 몰리는 고역대에서는 원 신호와 그만큼 달라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R-2R 래더 DAC에 투입된 저항들이 레이저 컷에 오차범위가 0.1% 이하에 머무는 것, 그래서 제조단가가 높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일부 R-2R 방식의 DAC가 ‘고역대가 끝까지 뻗지 못한다’, ‘고역대에서 롤오프가 일어난다’ 등의 역풍을 맞은 것도 이 초정밀 저항 제작의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R-2R 래더 DAC의 또다른 특징은 태생적으로 오버 샘플링(Over-sampling)을 쓰지 않고, 컨버팅 뒷단에 별도의 ‘I/V 변환회로’(전류-전압 변환회로)가 필요없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델타 시그마 방식은 기본적으로 ‘1비트’ 방식(R-2R은 멀티비트 방식)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오버 샘플링과 일종의 피드백 회로를 통한 보정 작업(시그마), 노이즈 쉐이핑(noise-shaping), 최종 출력전압을 얻기 위한 ‘I/V 변환회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뱅상 브리앙이 지금까지 래더 DAC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각종 디지털/아날로그 필터가 일으키는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그래서 좀더 자연스럽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탈댁의 경우 고주파 재생의 경우에만 일종의 로우패스 필터인 ‘FIR(Finite Impulse Response)’ 필터를 거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토탈댁은 이처럼 컨버팅은 ‘디스크리트 R-2R 래더 DAC’ 방식을 쓰고,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방식을 통해 뱅상 브리앙이 직접 69비트 디지털볼륨단 등을 설계했다. 디지털볼륨이 마련됐기 때문에 파워앰프에 직결해도 된다. DAC 설계의 또다른 관건인 지터(jitter) 제어를 위해서는 내장 ‘FIFO’ 메모리에 커스텀 클럭을 마련했다. 내장 클럭이 지터를 보정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입력신호가 출력돼 나올 때까지 100분의 1초 가량 지연되는 것도 FPGA 설계 덕분이다. 한편 출력단의 신호경로에 일체의 커패시터를 쓰지 않는 점도 눈길을 끈다.
토탈댁의 모든 DAC은 PCM의 경우 최대 24비트, 192kHz까지 지원한다. 별도 옵션으로 ‘DSD’ 보드를 장착할 경우 DSD64 음원을 ‘DoP’(DSD over PCM) 방식으로 재생할 수 있다. 외국 매체 인터뷰를 보면, 뱅상 브리앙은 DSD 음원의 음질적 우위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토탈댁 전 모델은 래더 DAC 방식이라 오버 샘플링을 안쓰지만 ‘논-오버샘플링 보상필터’를 ‘On’ 시켜 다이내믹 레인지를 좀더 고역쪽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또한 옵션으로 뮤직서버/스트리밍 보드를 장착하면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기반 뮤직플레이어인 ‘ROON’도 곧바로 즐길 수 있다(ROON 레디 인증).
Totaldac의 라인업
토탈댁에서는 DAC 뿐만 아니라 외장 클럭인 ‘d1-digital-reclocker’, 뮤직서버/스트리머인 ‘d1-server’, 혼스피커인 ‘d150‘도 생산하고 있다. 필터가 내장된 USB케이블이나 이더넷 케이블도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의미에서 DAC 이외의 제품부터 살펴봤다.
▲ Totaldac 홈페이지에 게시된 d1-digital-reclocker을 거치기 전과 거친 후의 지터 변화
우선 ‘d1-digital-reclocker’은 시간축 오차인 지터 제거를 위한 초정밀 클락이 내장된 것은 물론, 24비트/176kHz PCM DAC을 DSD 재생이 가능한 DAC으로 바꿔주는 놀라운 기능도 포함됐다. 역시 디지털 액티브 크로스오버 설계에 주력해온 뱅상 브리앙의 노하우가 빛나는 대목이다. 기본 지터 제거 실력 역시 놀라운데, 이는 토탈댁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사진2). 위가 ‘d1-digital-reclocker’ 없이 10kHz 사인파가 입력됐을 때, 아래가 ‘d1-digital-reclocker’를 거친 후의 모습이다. 지터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혼스피커 ‘d150’은 올해 뮌헨오디오쇼에서도 시연했던 모델인데, 풀레인지 페이퍼콘에 860mm 직경의 우드 혼을 달았고 모자라는 저역은 15인치짜리 우퍼를 통해 보강했다. 크로스오버는 150Hz, 감도는 98dB, 공칭 임피던스는 8옴, 재생 주파수대역은 35Hz~20kHz. 높이는 1.42m, 무게는 56kg에 달한다. 옵션으로 50Hz 이하 저역 주파수 재생(하한은 20Hz)에 특화된 18인치짜리 서브우퍼가 마련됐다. 토탈댁에서는 이 서브우퍼에 200W 이상의 앰프를 물려줄 것을 권장하고 있다.
‘di-server’는 뮤직서버 겸 네트워크 플레이어. 물론 ‘룬 레디’ 인증마크를 받았으며, PC나 맥, 태블릿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내장 스토리지는 없지만 랜을 통해 NAS, USB메모리 직접 재생이 가능하다.
주력인 DAC의 경우 래더 DAC의 규모와 투입 저항수, 밸런스 설계 여부, 아날로그 출력단 설계 방식에 따라 보급형 ‘d1-core’부터 최상위 ‘d1-twelve’까지 7개 라인업이 마련됐다. 물론 모두 범용 DAC칩을 쓰지 않은, 디스크리트 R-2R 래더 DAC이며, 노이즈 관리를 위해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들어간 별도 리니어 방식의 파워서플라이를 마련했다. OLED 디스플레이가 박힌 사다리꼴 모양의 검은색 알루미늄 섀시 디자인과 크기도 전 모델이 똑같다(가로 122mm, 높이 65mm, 안길이 180mm). 섀시 재질은 알루미늄과 PMMA(폴리메탈크릴산메틸. 일종의 고분자화합물). 섀시 천장 안쪽에는 진동방지를 위해 순동 재질의 플레이트가 달려있다. 토탈댁의 DAC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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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ore |
d1-single-mk2 |
d1-integral-headphone |
d1-dual |
d1-tube-mk2 |
d1-six |
d1-twelve |
특징 |
보급형 |
d1-six DAC 심플 버전 |
DAC + 프리앰프 + 헤드폰앰프 + 뮤직서버 |
풀밸런스 DAC |
싱글엔디드 진공관 출력단 |
디스크리트 R2R 래더 DAC |
모노블럭 DAC + Reclocker |
R2R DAC |
채널당 1개 |
좌동 |
좌동 |
채널당 2개 |
좌동 |
채널당 3개 |
채널당 6개 |
R2R 저항(채널당) |
100개 |
좌동 |
좌동 |
200개 |
좌동 |
300개 |
600개 |
출력단 |
솔리드 스테이트 |
클래스A 트랜지스터 |
좌동 |
좌동 |
12AU7 |
클래스A 트랜지스터 |
없음 |
파워서플라이 |
외장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인클로저 |
알루미늄, PMMA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입력 |
Xmos USB, 광, RCA, AES/EBU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PCM 지원 포맷 |
최대 24비트/192kHz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DSD 지원 포맷 |
DoP(옵션)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RCA 출력전압 |
3.0Vrms |
좌동 |
좌동 |
3.1Vrms |
1.4Vrms |
2.5Vrms |
3.1Vrms |
XLR 출력전압 |
6.0Vrms |
없음 |
없음 |
6.2Vrms |
없음 |
5.0Vrms |
6.2Vrms |
헤드폰 출력전압 |
없음 |
3.0Vrms(32~600옴) |
3.0Vrms(15~600옴) |
3.1Vrms(32~600옴) |
없음 |
2.5Vrms(32~600옴) |
없음 |
클럭 |
커스텀 클럭 + 안티지터 FIFO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사이즈(WHD) |
360 x 110 x 290mm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좌동 |
무게 |
4kg |
6.5kg |
좌동 |
좌동 |
좌동 |
7kg |
좌동 |
#1. d1-core DAC
토탈댁의 R-2R 래더 DAC 사운드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입문형, 보급형 DAC이다. 말이 보급형이지 위의 ‘형들’과 똑같은 저항, 똑같은 FPGA 설계를 썼다. DAC 기판은 채널당 1개씩 썼으며 투입된 비쉐이 저항은 채널당 100개다. 옵션으로 뮤직서버/스트리밍 보드를 장착할 수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외장형 뮤직서버/스트리머인 ‘d1-server’와 똑같다.
#2. d1-single-mk2 DAC
채널당 3개의 DAC 기판을 쓴 ‘di-six’의 심플 버전으로, 채널당 1개의 DAC 기판에 100개 저항이 투입됐다(총 200개). 출력단에 들어간 부품이 ‘d1-core’보다 고급스럽고, 무엇보다 6.35mm 잭을 갖춘 헤드폰 출력단이 마련된 점이 눈에 띈다. 헤드폰 앰프 최대 출력전압은 3.0Vrms로, 32옴부터 600옴 헤드폰까지 물릴 수 있다.
#3. d1-integral-headphone music server/DAC
▲ d1-integral-headphone music server/DAC 의 예시 구성도
헤드폰 출력단과 뮤직서버 기능을 포함시킨 모델이다. 내장 메모리는 없지만 LAN을 통한 NAS, USB메모리 직접 재생이 가능하다. DAC 스펙은 ‘d1-single-mk2’와 동일하다.
#4. d1-dual DAC
이 모델부터가 토탈댁의 중핵이다. ‘d1-dual’은 출력단에 트랜지스터를 쓴 모델로, ‘듀얼’이라는 말 그대로 풀 밸런스 회로로 설계됐다. 채널당 2개의 래더 DAC, 채널당 200개의 비쉐이 저항이 투입됐다. 병렬 연결된 이 저항이 많을수록 노이즈를 줄이고 임피던스를 낮출 수 있다. 물론 제조단가는 높아진다. ’d1-core’나 ‘d1-single-mk2’의 XLR 출력단이 실질적으로 언밸런스 출력인 것에 비해 ‘d1-dual’에서는 당연히 밸런스 출력이다. RCA, XLR 출력전압 역시 동료들 중 가장 높다(최상위 ‘d1-twelve’와 동일).
#5. d1-tube-mk2 DAC
‘d1-dual’의 진공관 버전이다. 출력단에 쌍3극관인 12AU7을 채널당 1개씩 투입했다. 출력 임피던스는 420옴.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모델이다. 국내에 공식 수입원이 생긴 만큼, 필자 개인적으로도 가장 빨리 듣고 싶은 모델이기도 하다.
#6. d1-six DAC
말 그대로 채널당 3개씩, 총 6개의 래더 DAC이 투입됐다. 따라서 비쉐이 저항은 채널당 300개씩, 총 600개에 이른다. 출력단에는 트랜지스터를 썼다.
#7. d1-twelve DAC
토탈댁의 플래그십 DAC이자 유일한 모노블럭 DAC이다. 일종의 외장 클럭인 ‘d1-digital-reclocker’ 스페셜 버전까지 포함돼 총 3박스 구성이다. ‘Recloker’를 생략한 2박스 구성의 ‘d1-monoblock’도 있다. 한 채널(블럭)당 6개의 래더 DAC, 600개의 비쉐이 저항이 투입된 ‘물량의 DAC’다. 출력 임피던스가 매우 낮기 때문에 별도의 출력단 없이 곧바로 앰프에 물릴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 ‘d1-twelve’는 극도의 해상력과 높은 감도를 갖춘 스피커를 위해 탄생했다고 한다. 저역의 펀치력을 원하는 유저를 위해 트랜지스터 출력단을 포함시킨 ‘d1-twelve-SE’ 모델도 있다.
-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