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에어리얼 어쿠스틱스 & 윌슨 오디오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발전된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일반적으로 스피커 전면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트위터 유닛부터 살펴보면 기존의 종이, 실크, 알루미늄 등에서 벗어나 베릴륨, 다이아몬드, 아큐톤, 리본 등 원가가 높고 가공이 까다로운 재질을 사용하면서 고주파수 음역대의 한계를 나날이 경신하고 있고, 인클로저 또한 기존에 단순히 목재 패널을 접착해서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패널의 두께와 밀도를 높이거나, 패널과 패널을 짜맞춤 공법으로 엮거나, 내부 하우징은 팽창하고 외부 하우징은 수축하게끔 처리한 이중 구조를 취한 후 그 사이를 특수한 접착제로 매우는 등 공진을 억제하고 인클로져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질 자체를 무겁고 단단한 인공석 혹은 알루미늄 등의 금속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알루미늄을 CNC 가공해 통절삭 한 제품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발전은 재질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닛 간의 시간 축을 일치시키기 위해 전면과 후면에 경사를 주어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거나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듯 상부와 하부를 분리설계한 후 상부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피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는 외관에서부터 기존의 고전적인 스피커와 차별점을 두는 독특한 형상으로 오디오파일들에게 자사만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도 마찬가지다. 구조부터 시작하면 앞서 언급했듯 유닛 간에 간섭을 방지하기 위해 상부와 하부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거나, 층층이 격벽을 쌓거나, 트랜스미션 라인 방식으로 미로와 같이 설계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고, 브레이싱 패턴이나 흡음재의 재질, 부착 양과 위치 등도 내부에서 발생되는 정재파, 주파수별 간섭 감쇠 등을 위해 제조사들은 각각의 연구 결과를 통해 저마다의 방식에 따라 다채롭게 적용하고 있다.
이런 스피커들을 보고 있자면 통절삭한 케이스 안에 겹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회로 기판과 커다란 듀얼 트랜스포머, 그리고 커패시터 등으로 속이 꽉 찬 앰프가 연상되곤 하는데, 이러한 최근 추세와는 정 반대의 관점에서 사고를 한 이가 있다. 바로 일본의 토루 하라(Toru Hara)다.
Toru Hara
▲ 키소 어쿠스틱의 창시자이자 현 대표인 토루 하라
토루 하라는 수십 년 동안 라이브 음악 녹음에 참여해온 열렬한 오디오파일로, 1930년대의 골동품 장비에서부터 최신 하이엔드 설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스피커를 소유하고 청음하면서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하나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들은 기술과 측정치 등 찬사 받을 점들이 많지만 음악의 재생이라는 관점에 있어서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니라는 것, 둘째는 각자의 접근 방식마다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라이브 음악과 재생된 소리의 갭은 좁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한 중요한 계기가 찾아온다. 라이브 음악 녹음에 참여하는 그의 직업 상 연주자 및 악기 제조업체와 가깝게 지내던 그는, 기타나 바이올린 등의 목재 현악기와 스피커의 캐비닛 구조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고전적인 스피커들은 통울림이 발생하기 쉬운 얇고 가벼운 목재로 캐비닛을 만들어 왔고, 현대 하이엔드 제품들은 캐비닛에서 유발되는 공진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배제시키기 위해 캐비닛을 가능한 단단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목재 현악기들은 고전적인 스피커와 같이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 통울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장 듣기 좋은 잔향 특성을 달성하기 위해 높은 품질의 음향목(Tone-wood)을 사용하고 이에 더해 정교한 공진 제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그로 하여금 ‘목재 현악기의 구조와 캐비닛 특성을 스피커에 적용시켜 보자’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Kiso Acoustic Speaker Project - Cabinet
그러한 그의 결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타 제작사 타카미네(Takamine)와 만나 ‘키소 어쿠스틱 스피커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수십 년간 세계 최고의 목재 현악기를 제작하며 쌓아온 경험을 통해 음향목의 특성, 목공 및 공진 제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타카미네는 이 프로젝트를 구상함에 있어 적임이었던 것이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간단했다. ‘목재 현악기의 장점과 특성을 스피커에 알맞게 적용시켜 기존 스피커의 한계와 틀을 벗어나는 고성능 스피커를 제작하는 것’. 그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첫 시작점인 설계 방식부터 모든 구성 요소의 선정, 제작 기술,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도장 마감까지 어쿠스틱 및 클래식 기타에 의거해 그와 매우 흡사한 기술과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 Tone-Woods
먼저 캐비닛의 재질은 가장 듣기 좋은 잔향 특성을 달성하기 위해 프리미엄 등급의 기타에 사용되는 최상급 품질의 솔리드 음향목이 채택되었다. 음질적 향상 외에 솔리드 음향목을 사용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 즉, MDF를 여러 층 겹쳐 사용하는 고전적인 스피커나 공진을 최대한 억제한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와는 달리 음향목을 울리기 용이하게 얇고 단일 층으로 제작할 시 각 목재의 경도와 밀도 등에 따른 음색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을 이들은 놓치지 않고 반영했다. 기본 사양은 중역대가 충실하고 따스한 음색을 지녔으며 매우 중립적이고 밸런스가 뛰어나 로즈우드와 더불어 어쿠스틱 및 클래식 기타의 측후판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마호가니 버전이지만, 선택사항으로 보다 직진성이 강하고 선명하며 음색이 밝아 경쾌하고 이미징이 뛰어난 메이플, 그리고 무늬가 매우 아름답지만 현재 벌목이 금지되어 있어 희소가치가 높으며, 반응속도는 빠르지만 선이 굵직굵직하고 음색에 특유의 매력적인 달콤함을 지니고 있어 핑거스타일 연주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선망의 재료인 하와이안 코아까지 총 세 가지 목재 버전을 제공해 마치 하이엔드 커스텀 기타처럼 개인의 음색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좌측부터 마호가니, 메이플, 하와이안 코아 음향목이 테일러 어쿠스틱 기타에 사용된 예시
# Dimension
캐비닛의 크기는 클수록 충분한 규격의 유닛을 장착할 수 있고 내부에 울릴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지기 때문에 소리를 웅장하게 재생하기에는 용이한 반면 그만큼 공진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의 선택은 웅장함 보다는 완벽한 공진 제어이자 고성능이었고, 그 결과 높이 313, 넓이 148, 깊이 224mm에 불과한 초소형 사이즈의 캐비닛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캐비닛의 사이즈가 이와 같이 컴팩트하게 제한되어 있을 경우, 스케일과 주파수 대역에 불만이 생길 수 있는데, 이들은 이에 대한 해소 방법 역시 목재 현악기의 제작 방식에서 찾았다.
# Body Shape & Thickness
그 첫 번째 방법은 얇은 측면 패널 두께로, 이들은 바디의 울림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측면 패널을 일반적인 스피커의 약 1/10 정도의 수준이자 기타 중에서도 굉장히 얇은 편에 속하는 2.6mm에 불과하게 처리했다. 일반적으로 기타를 제작함에 있어 음파의 방사를 개방적이고 외향적으로, 서스테인과 릴리즈 타임을 길게, 그리고 소리 자체의 데시벨을 크게 만들고자 할 때 전·후면 두께를 얇게 제작하곤 하는데, 이 프로젝트에도 동일한 방식의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는 바디 셰이프였다. 측면 패널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이음새 없이 하나로 이루어진 바디는, 유닛 장착의 이유로 평평하게 처리된 전면을 제외하고는 마치 기타 하체를 반 잘라놓은 것 같이 매끄럽게 곡면 처리되어 있고 상·하단에는 부드럽게 긴장되어 있는 형상으로 설계되었는데, 이 또한 통울림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할 뿐만 아니라 음의 회절이나 정재파를 감소시키고 주파수를 평탄하게 만들고자 한 의도가 숨어있다.
▲ 2.6mm의 측면 패널 & 기타 하체를 반 잘라놓은 듯한 바디 셰이프
# Internal Structure
셋째는 외관을 지나 스피커로서 너무나도 특이해 보이는 내부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내부에 일체의 격벽이나 흡음재를 허용치 않고 텅 빈 상태인 채로 두었는데, 이는 소리를 재생함에 있어 캐비닛의 통울림과 잔향이 드라이버 유닛과 조화를 이루어 연주되기 때문으로, 음악적 에너지를 일체의 억제나 저장 없이 캐비닛에 전달해 즉각 방출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초박형이자 초경량의 측면 패널 두께, 기타의 하체를 반 잘라놓은 것처럼 곡면으로 이루어진 바디 셰이프와 만나 통울림을 극대화시켜 컴팩트한 초소형 사이즈의 캐비닛 대비 커다란 스케일, 그리고 부족함 없는 주파수 대역을 자아내고, 아울러 억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스트레스 없는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다.
▲ 일체의 격벽이나 흡음재가 없는 내부
# Kerfing & Bracing
하지만 아무리 기존의 스피커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제작되어 라이브 음악과 재생된 소리의 갭을 획기적으로 좁히고 사이즈를 뛰어넘는 스케일과 주파수 대역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공진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마감이 뛰어나지 않으면 이러한 시도는 무용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앞서 언급했던 내용 중 스피커의 캐비닛 크기를 초소형으로 제한한 것, 바디 셰이프를 곡면 처리한 것 등이 외관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내부에는 커핑과 브레이싱에서 그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커핑이란 기타의 바디 안 쪽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톱질 자국이 있는 길쭉한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디의 모양을 지탱하고 양 측면 패널이 만나는 지점의 표면을 추가적으로 접착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의 톱질 자국은 곡면으로 이루어진 기타의 셰이프에 맞춰 유연하고 쉽게 구부러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일반적인 스피커가 접착하거나 짜맞춤 공법을 사용하거나 절삭 방식을 택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곡면 처리된 바디 셰이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인 커핑을 사용했다.
브레이싱 즉, 보강재는 기타의 경우 사용되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용도별로 분류하면 크게 장력을 버티기 위한 용도, 그리고 울림이나 음색, 판의 반응성을 조절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이른 바 톤바(Tonebar)로 나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사용되었는데, 곡면 처리된 바디 셰이프에 장력을 버티기 위한 사이드 브레이싱이 두 개, 그리고 현이 없어 장력이 강하지 않은 측면 패널에 톤바가 각각 다섯 개씩 사용되었다. 톤바는 스캘럽(Scalloped) 처리 즉, 유선형으로 깎여져 있는데, 이는 유닛으로부터 전달된 진동이 양 측면 패널을 타고 퍼질 때 물결 모양인 브레이싱의 형태를 통해 음파가 퍼지는 특성을 원활하게 하고 판의 울림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 톤바 브레이싱에 유선형 모양의 스캘럽 처리 작업
# Binding & Purfling
마지막으로 눈여겨 볼 것은 다시 외관으로 넘어가 하이엔드 기타의 캐비닛 제작 과정에 있어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바인딩(Binding)과 퍼플링(Purfling)이다. 바인딩은 외부의 가장자리에 덧붙여지는 장식용 나무를, 퍼플링은 바인딩의 안쪽을 따라 인레이 되어있는 가느다란 장식용 조각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비록 음질과 무관하고 사소한 작업들이지만, 미관상의 아름다움과 당사의 정체성을 부여해준다는 관점에서는 한편으로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해당 조각들이 들어갈 별도의 홈을 파야하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고 정교하게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2013년에 출시된 상위 기종프로젝트에는 포함되면서 캐비닛은 음악성과 음질만을 고려한 것을 넘어 기존의 일반적인 스피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자신만의 예술성과 미적 감각까지 지니게 된다.
▲ 바인딩과 퍼플링 처리 과정
Kiso Acoustic Speaker Project - Drivers & Crossover
타카미네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캐비닛이 이 프로젝트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다뤘지만 이제 스피커를 구성하는 세 가지 주요 요소인 캐비닛, 유닛, 크로스오버 중 첫 번째를 다뤘을 뿐이다. 토루 하라가 스피커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와 그 방식은 '목재 현악기의 장점과 특성을 스피커에 알맞게 적용시키는 것' 이었지만, 최종 목표는 '기존 스피커의 한계와 틀을 벗어나는 고성능 스피커를 만드는 것' 이었던 만큼 유닛과 크로스오버 또한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생각되는 전문 업체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찾아나서 본인이 연구 개발 중인 프로젝트의 목표와 방법을 전달하는 등 프로젝트의 성격과 컨셉에 맞고 본인이 원하는 수준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업체를 찾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훌륭한 업체들과 협업을 하게 되면서 프로젝트는 다음 단계로 전진하게 된다.
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일본의 오디오 장비 전문 업체인 포스텍스(Fostex), 덴마크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인도의 스피커 및 유닛 제작 업체 피어리스(Peerless), 그리고 별 다른 수식이 필요없는 독일의 문도르프(Mundorf)이다. 포트텍스로부터는 혼 트위터 유닛을 공급받는데, 키소는 귀와 컴퓨터 측정 장비, 이 두 가지에 의한 철저한 선정 과정으로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고 전체 공급 수량 중 약 40~45%만을 사용한다. 절반 이상이 이 과정에서 걸러지는 것이다. 이렇게 걸러진 트위터는 플라스틱 부분이 배제되고 전면 배플과 완벽히 일체화되는 자사의 흑단 혼으로 대체되며, 보다 매끄러운 응답을 얻어내기 위해 페이즈플러그에 수정이 가해진다. 피어리스에서는 드라이브 유닛을 제공받으며 4인치 유닛을 별 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지만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반절 정도가 걸러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 측정 테스트 중인 트위터 유닛
문도르프는 마지막으로 남은 크로스오버의 구성 요소를 담당한다. 크로스오버의 개발과 제작은 최신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도구의 작동을 기반으로 일본의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구성 요소들은 전량 독일의 문도르프에서 공급 내지 특주되는 것이다. 특히 상위 기종 프로젝트에서는 캐비닛의 하단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크로스오버 구획의 브레이스를 조정하면서 공간을 넓히고 에어-코어 인덕터, 실버-골드 포일 커패시터 등 크로스오버 구성 요소 중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것들은 모두 문도르프의 최상급 내지 특주품으로 변경하면서 크로스오버 또한 세계 일류급으로 그 수준이 향상되었다. 내부 와이어링은 또 다른 독일 회사로부터 공급받는데, 7가닥의 릿츠 와이어로 매우 뻣뻣하고 에나멜을 제거하기에 어려움이 큼에도 불구하고 본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사운드와 컨셉으로 채용되었다. 참고로 스피커 터미널은 커스텀 메이드로 로듐 도금처리 된다.
▲ HB-X1의 하단, 캐비닛과는 분리된 구획에 내장된 크로스오버
Result
‘목재 현악기의 장점과 특성을 스피커에 알맞게 적용시켜 기존 스피커의 한계와 틀을 벗어나는 고성능 스피커를 제작하는 것’ 을 목표로 여러 해에 걸쳐 내로라하는 업체들과 협업을 맺고 진행되었던 키소 어쿠스틱 스피커 프로젝트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프리미엄 등급의 악기 바디와 최상급 품질의 스피커 드라이버 및 크로스오버 네트워크가 융합된 형태로 HB-1이라는 이름 하에 2008년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컴팩트한 초소형 사이즈의 아름다운 캐비닛이 자아내는 억제되지 않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리와 믿기지 않는 커다란 스케일, 그리고 부족함 없는 주파수 대역으로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오디오파일들을 매료시킨 후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크로스오버를 향상시키고 캐비닛 외관에 바인딩과 퍼플링을 추가한 상위모델이 5년 후 'HB-X1' 이라는 모델명으로 출시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국내 소비자들 앞에 선을 보였다.
▲ 2014년 6월, 한국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인 HB-X1
키소 어쿠스틱 HB-X1에 대한 리뷰는 여러 파트에 걸쳐 본인을 포함해 다양한 필자에 의해 진행될 터, 이번 글은 브랜드 소개 차원에서 서막 개념으로 '키소 어쿠스틱 스피커 프로젝트'의 대체적인 윤곽을 짚어보았다.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비롯되어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키소 어쿠스틱 스피커 프로젝트. 이제 그 결실에 대해 작은 크기와 높은 가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유일무이하고 매력적인 자질을 느끼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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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은 녀석이 이렇게 비싸?
편집부에 잠시 들렀다가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키소 어쿠스틱이라는 생소한 일본 메이커가 만든 HB-X1이라는 작은 스피커다. 실물을 본 것은 물론 처음. 오래 전에 해외 오디오 잡지에서 전작 HB-1의 기사를 잠깐 읽은 적이 있었는데, 북셀프 타입의 스피커로서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참 대단해,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이렇게 비쌀까’ 하는 생각을 했고, 당시 내가 내렸던 결론은 어떤 놀랄 만한 신기술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어떤 실적도 없는 신생 메이커의 제품이라면, 그 제품의 미래는 더욱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소 어쿠스틱이 다른 제품 없이 이 작은 스피커만으로 10년 가까이 사세를 꾸준히 확장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예상은 가볍게 빗나간 것 같다.
놀라운 점은 키소 어쿠스틱의 HB-X1이 내 눈 앞에 보였다는 사실이다. 나로 말하자면, 지난 번 카리스마의 리뷰에 썼던 것처럼 개성을 가진 오디오라면 모두 다 좋다는 입장이지만, 합리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판단해야 하는 수입원의 입장은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시장이 작고 열악한 국내 수입원의 입장에서 키소 어쿠스틱의 스피커를 수입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생긴 어느 용감한 수입원에서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했다. 짐작컨대 그 수입원을 주재하는 분은 열렬한 오디오 애호가일 것이며 해외에서 분명히 이 작은 녀석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먼저 반한 후, 수입을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국내 시장에서 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쓰겠다는 ‘비사업적인’ 마인드가 짙게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녀석을 보니 작아도 너무 작다. 사진을 보며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HB-X1의 미드우퍼는 불과 10cm. 작기로 유명한 LS 3/5A의 11cm 미드 우퍼보다도 작은 유닛이다. 특히 유닛 양 옆에 여유를 두지 않아 폭이 매우 좁아서 더욱 작게 보인다. 대신 인클로저의 깊이는 제법 깊고 곡면으로 만들어졌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어져서 안정감이 있고 만듦새나 마감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다. 예상보다도 이렇게나 작다니 더욱 소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거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결국은 자리에 눌러 앉고 말았다.
그렇게 들어본 소리는... 독자들에게 식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충격’이라는 말밖에 다른 표현을 하기 어렵다. 아마 예전에 이런 ‘충격’을 예상했더라면, 지금까지 썼던 리뷰에서 ‘충격’이라는 표현은 절반 이상 삭제되었을 것이다. 우선 음악이 나오면 HB-X1이 사라진다. 이 역시 흔히 쓰는 표현으로, 스피커 유닛에서 나온 음이 제대로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으면 음이 스피커에 ‘달라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즉 스피커의 존재가 의식되고), 음장이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유닛들의 편차가 크거나 네트워크가 정밀하지 않으면, 그리고 유닛 배플 면에서 잡스런 반사나 회절이 있으면 음장은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하이엔드 스피커를 들으면서 스피커가 사라진다는 표현을 자주 했지만, 그 표현은 양 스피커의 중앙에 맺힌 음상이 자연스러워서 소리가 좌우 스피커의 유닛에서 나온다는 느낌이 의식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HB-X1은 스피커가 ‘그냥’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다. 양 스피커의 ‘사이’조차 의식되지 않고 스피커가 있는 자리, 아니 그 바깥까지 음장이 넓게 펼쳐진다. 스피커의 유닛이 있는 곳에서도 음악이 들리는데, 그 음은 그 유닛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펼쳐놓은 것으로 들린다. 이 음장은 내가 꿈에 그리던 완전한 한 장의 ‘그림’으로, 스피커의 모든 구성 요소 - 유닛과 네트워크, 인클로저까지 철저하게 단 하나의 ‘시스템’으로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최고의 경지다.
어쿠스틱 호텔 캘리포니아. 마냥 넋을 잃고 있기가 민망해서 저역이 듬뿍 든 소스를 골랐다. 이런... 소형이라는 느낌은 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한 저역이다. 게다가 라이브 녹음의 환상적인 음장이 더 돋보인다. 우리가 자주 체크하는 박수 소리는 메마르지 않고, 손바닥에 적당히 살이 붙은 포동포동한 박수 소리로서 고역이 지독하게 섬세하다. 섬세하면서 특별히 강조된 대역이 없기 때문에 음색은 순하고 다소 연하게 들리며 열기보다는 약간 서늘한 느낌. 록 콘서트의 강렬한 디스토션보다는 어쿠스틱 악기의 정갈한 녹음에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소리를 계속 듣다보니 점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데, 이 정도 제품이라면 이 가격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HB-X1을 들은 후로 한동안 내 오디오로 비슷한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역시 여의치가 않았다. 어떻게 신생 메이커에서 더구나 그런 크기로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마침 본지에는 박진형님이 HB-X1의 하드웨어에 대해 공들여 쓴 상세한 리포트가 실려 있다. 포스텍스 혼 트위터, 피어리스의 미드우퍼, 몬도르프의 각종 고급 부품들이야 하이엔드 기기에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 스피커는 놀랍게도 키소 어쿠스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타 제조사 타카미네와 협력해서 만든 것이었다. HB-X1 뒷면의 아름다운 곡선은 바로 기타의 캐비닛에서 따온 ‘필수적인’ 형상이었던 것이다. 기타의 캐비닛은 얇고 가볍다. 그리고 기타 줄의 진동에 공명해서 스스로 아름다운 울림을 보태준다.
실로 발상의 전환이다. 스피커의 인클로저는 그 울림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요즘 하이엔드 스피커의 대세로서 유닛만이 울리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지며 두껍고 무겁고 내부에는 댐핑이 잔뜩 되어 있다. 재료로 단단한 목재 외에 석재나 금속을 쓰기도 한다. 나머지 부류는 하베스나 스펜더와 같은 전통적인 영국의 스피커들로, 유닛과 함께 인클로저를 적당히 울리도록 만든다. HB-X1은 후자의 방식으로서 기존 ‘깍두기’ 모양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기타처럼 내부에 흡음재나 댐핑재를 전혀 쓰지 않고 네트워크 부품들도 인클로저의 아래에 격리시켜 놓았다. 그리고 악기처럼 텅 빈 인클로저의 울림을 제대로 조율해낸 ‘악기형’ 스피커인 것이다. 기타가 사방으로 소리를 내는 것처럼 HB-X1의 매혹적인 음장의 비결은 특히 아름답게 울리는 인클로저에 있었던 것이다. 작은 유닛과 좁은 폭, 그리고 넓은 옆면은 그 울림이 회절이나 반사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기 위한 최적의 형상이었고, HB-X1을 들을 때 스피커의 바깥까지 음장이 펼쳐지는 것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악기형’ 스피커라고 하면 독자들도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감탄할 만큼 좋게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기 메이커가 직접 만든 독특한 스피커는 너무나 형편없어서 리뷰조차 거절한 기억도 있는데(그 악기 브랜드는 스피커 부분을 금세 정리했다), 단지 악기의 발성 구조를 흉내 내거나, 제조 공법을 비슷하게 한다고 해서 좋은 스피커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악기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개개의 구성 부품들이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통합된 것과 같이, 스피커 역시 인클로저는 물론 유닛과 네트워크 부품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HB-X1은 지금 유일하게 ‘악기형’ 스피커라고 불릴 수 있는 제품이며, 악기의 방식으로 울림의 조율에 성공한 독특한 작품으로 오래도록 스피커의 역사에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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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대치동 955-2 (삼성로 82길 24) 태양빌딩 1층 (2호선 삼성역 4번출구 대명중학교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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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토요일 오픈 오전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매주 일요일 휴무 ( 청음시 예약은 필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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